아모레퍼시픽이 화장품 회사로서 국내에서 입지를 굳히던 1960년대, 창업자 서성환 회장은 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중, 가슴 속에 하나의 물음표를 가지게 됩니다. “외국의 각 나라들은 이렇게 자기들만의 독특한 차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엔 음다(飮茶) 문화가 사라졌을까?”
녹차의 불모지가 되어버린 이 땅에 사라진 차문화를 부활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아모레퍼시픽은 녹차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차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던 서성환 회장은 녹차 사업이 될 리가 없다는 당시의 사회의 통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녹차 사업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황무지 개간에 나서게 됩니다. 질 좋은 녹차의 직접 재배를 위해 다원 부지를 수 차례 잡사한 결과, 최적의 조건을 갖춘 제주도가 선정되었습니다. 녹차를 사랑했던 추사 김정희의 혼이 서린 곳이기도 했습니다. 한라산 중턱의 황무지였던 도순다원을 시작으로 서광다원, 한남 다원의 개간이 차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현재의 설록차 다원은 바라보면 사람을 풍요로운 감상에 취하게도 하고 나른한 감미로움에 빠져들게도 하는 이국의 청취가 풍기는 초록의 다원으로 거듭나 있지만, 다원 개간을 시작한 20여 년 전인 1970년대만 해도 돌산에 거친 흙이 뒤덮고 있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한라산 도순다원 개간을 시작으로 강진 월출산다원, 제주도 서광/한남다원 개간까지의 과정은 일꾼들의 신념과 열정이 없으면 해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부지런한 농사꾼에게 나쁜 땅이 없다”는 말처럼 아모레퍼시픽은 농사꾼의 우직함과 열정으로 지금의 설록차 다원을 이루어 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녹차에 담긴 아름다움과 건강을 즐기게 하자!” 아모레퍼시픽이 설록차를 만들 때 하는 생각입니다. 설록차는 전통적인 제조방법을 현대적으로 재현하였습니다. 녹차 고유의 색과 향미를 갖추면서도 생산과정이 위생적이어야 하고, 또한 좋은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대량 생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차의 가공과 생산 기술 발전에 헌신하였습니다.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고 보다 대중화하기 위한 설록차의 노력은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 개발(일로향 등), 국내 최초 차 박물관인 오설록 개관, 도심 속의 테마카페 오설록 티하우스 등으로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전통 문화의 계승과 더불어 차를 사랑하는 분들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명차를 만들어 많은 분들에게 선사하기 위한 설록차의 장인정신은 계속됩니다.